SK케미칼은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중국 상하이 훙차오 국립전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차이나플라스 2024에 참가했다. 사진은 SK케미칼 부스.  SK케미칼 제공
SK케미칼은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중국 상하이 훙차오 국립전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차이나플라스 2024에 참가했다. 사진은 SK케미칼 부스. SK케미칼 제공
“소각장으로 직행하던 저품질 플라스틱을 원료 상태로 되돌리고, 이를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의 각축장.”

지난달 25일 세계 3대 플라스틱·고무 박람회 ‘차이나플라스 2024’가 열린 중국 상하이 국제컨벤션센터. 이날 행사를 둘러본 참석자들은 “중국의 ‘저가 플라스틱 공세’를 이겨내야 하는 것이 화두가 되면서 글로벌 화학업계의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이같이 입을 모았다. 행사장에서 만난 안재현 SK케미칼 사장 역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가운데 친환경 트렌드에 맞는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런 기술을 개발해 중국 기업에 앞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재활용 제품 각축장 된 박람회

지난달 23~26일 열린 차이나플라스는 글로벌 기업들이 갈고 닦은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뽐내는 자리였다. SK케미칼,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 국내 기업뿐 아니라 독일 바스프, 중국 시노펙 등이 친환경 제품을 전시했다. 이 행사엔 세계 440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

SK케미칼은 ‘순환 재활용’이란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다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드는 재활용 플라스틱 사업이다. 그중에서도 SK케미칼은 해중합 기술을 기반으로 한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선보였다.

페트병으로 불리는 폴리에스테르(PET) 소재는 이물질이 없는 투명한 생수병 정도로만 재활용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 재활용이 분쇄, 세척, 열처리 등 물리적인 방식으로 처리되는 ‘기계적 재활용’에 머무른 탓이다. 재활용 횟수도 두세 번에 그쳤다.

화학적 재활용은 이런 단점을 보완했다. 음식 찌꺼기가 묻거나 색깔이 있는 페트병도 ‘무한 재활용’할 수 있다. 폐플라스틱을 화학 처리해 원료 상태로 분해한 뒤 이를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해중합 기술 덕분이다. 플라스틱은 원료(모노머)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폴리머 형태가 되는 중합 반응을 거치는데, 해중합은 중합의 역반응을 줘서 폴리머를 다시 원료로 돌리는 기술이다.

무한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플라스틱을 분자 단위로 분해해 만들기 때문에 석유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플라스틱과 동일한 물성과 품질을 구현할 수 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섬유나 고도의 물성을 요구하는 제품에도 폭넓게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재활용 횟수도 늘어난다. 물리적 재활용으로 만든 제품은 이를 재활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PET병을 소재로 티셔츠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버려진 티셔츠는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버려진 플라스틱을 다시 원료로 돌리는 해중합 방식을 이용하면 몇 번이든 물성과 품질을 유지한 채 다시 재활용을 할 수 있다.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의 양도 늘어난다. 현재 물리적 재활용 방식으로 재활용될 수 있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투명 소재 PET병에 불과하다. 색상이 있는 제품이나 PET병이 아닌 다른 형태의 제품은 재활용 불가 품목이다. 화학적 재활용 방식을 이용하면 투명 병뿐 아니라 두꺼운 용기 등 형태와 무관하게 다시 사용될 수 있다. 물리적 재활용 기술을 기반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은 23%인데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이용하면 그 비중은 63%로 늘어난다는 게 SK케미칼의 설명이다.

SK케미칼은 이런 기술을 활용해 전용 재활용 공장에서 제조한 플라스틱을 전시해 주목받았다. SK케미칼은 중국 자회사인 SK산토우에서 연 7만t 분량의 재활용 PET 원료를 생산하고 있다. 500mL 생수병을 70억 개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 원료는 SK케미칼 울산공장으로 옮겨져 제주 삼다수 페트병과 오뚜기의 소스 용기 소재 등으로 변신한다. 안 사장은 “폐기 외엔 방법이 없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만큼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일반 PET 원료는 ㎏당 1달러 안팎이지만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만든 제품은 ㎏당 2달러를 훌쩍 넘는다.

친환경 규제에 민감한 글로벌 화장품회사 등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안 사장은 “폐플라스틱 수거부터 분류, 재활용되는 전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고객에게 제공한다”며 “각 기업이 이 제품을 쓰면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해야 하는 스코프3를 맞추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 ‘차이나플라스 2024’ 부스 조감도 LG화학 제공
LG화학 ‘차이나플라스 2024’ 부스 조감도 LG화학 제공

LG화학·롯데케미칼·효성화학 "우리도 친환경 고부가 제품 글로벌시장 도전"

친환경에 힘을 준 국내 회사는 SK케미칼뿐만이 아니다.

롯데케미칼도 폐플라스틱을 강한 열로 분해해 액체화한 뒤 이를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기술로 주목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폐플라스틱에 남아있는 이물질을 화학적 반응으로 제거하는 기술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재활용이 가능한 폐플라스틱 종류가 대폭 늘었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화학군 ‘차이나플라스 2024’ 부스  롯데케미칼 제공
롯데그룹 화학군 ‘차이나플라스 2024’ 부스 롯데케미칼 제공
LG화학은 국내 기업 중 최대인 400㎡ 규모 부스를 꾸리고 친환경 고부가 제품을 적극 소개했다. 땅에 묻으면 6개월 안에 자연 분해되는 고강도 생분해성플라스틱(PBAT)과 바이오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 열분해유 플라스틱 제품 등을 전시했다. 모빌리티 존에서는 LG화학의 독자기술로 개발한 엔지니어링플라스틱(EP)으로 만든 전기차 배터리 하우징 제품도 확인할 수 있었다. 좀 더 가볍고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동시에 충격에 강한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효성화학은 적은 원료로 얇은 파이프를 만들 수 있고, 색도 입힐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전시했다. 이 소재는 오랜 기간 깨지지 않고 견디는 장기내압성,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고내열성 등을 강화한 것으로,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 유럽 시장이 주요 타깃이다. 폴리프로필렌(PP), 폴리케톤(POK), 스판덱스의 원료인 PTMG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도 주요 전시 품목이었다.

SK이노베이션 계열 석유화학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에틸렌아크릴산(EAA), 아이오노머(I/O), 고기능성 폴리머 등 고부가 화학 제품들을 선보였다. 특포장재용 접착제로 쓰이는 EAA는 수요가 늘고 있다. 플라스틱을 대신해 종이용기와 종이컵을 사용하는 곳이 많아지면서다. EAA를 만드는 세계 4개 회사 중 아시아 기업은 SK지오센트릭뿐이다.

SK지오센트릭은 공격적으로 EAA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17년 미국 다우케미칼로부터 미국 텍사스, 스페인 타라고나 등 2개 공장을 인수했다. 작년 6월부터는 중국 장쑤성 롄윈강시에 EAA 공장을 추가로 짓고 있다. 내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저가 물량 공세를 앞세운 중국 회사들과 격차를 벌리기 위해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오롱ENP는 친환경 제품 브랜드 에코(ECHO)를 처음 선보이며 글로벌 참관객의 관심을 끌었다. 바이오 폐기물 원료를 기반으로 한 에코-B, 탄소를 포집해 생산한 원료를 사용한 에코-LC,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수소로 생산된 원료를 적용한 에코-E 등의 제품을 선보였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이용한 에코-R도 있다. 독일 바스프는 폐기되는 어망을 모아 재활용한 티셔츠를 전시했다.

상하이=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